안녕하세요 "그럴수있어 그러라그래"입니다.
지난 3편에서는 원래 대한민국 금융의 심장이었던 명동 증권가가 왜 한강을 건너 여의도로 대이동을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황금빛 63빌딩과 함께 '한국의 맨해튼'으로 진화한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정치인들이 튼튼한 둑을 쌓아 길을 닦고(1, 2부)
그 위에 대한민국 최고의 자본과 엘리베이터 같은 인프라가 꽉 채워지면서(3부) 여의도는 남부러울 것 없는 최고의 신도시가 되었습니다.
오늘 다룰 [여의도 개발사 시리즈의 마지막 4편]은
이 완벽한 도시 위에 지어졌던 대한민국 고급 아파트의 시초 '여의도 시범아파트'의 탄생 비화와 지금 여의도가 왜 '최고 60~70층 초고층 재건축'이라는 또 다른 거대한 기적을 준비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땅은 넓은데 살 사람이 없다? 정부의 고민
1970년대 초, 윤중제 공사로 여의도라는 거대한 신도시 땅은 확보했지만 정부에게는 말 못 할 고민이 있었습니다. 도로도 넓고 국회의사당도 들어서는데, 정작 "이 멀고 낯선 한강 섬까지 이사 와서 살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의 부유층과 중산층은 여전히 사대문 안(종로, 중구)이나 전통적인 부촌에 머무르고 싶어 했고 한강 한복판의 모래 벌판이었던 여의도는 "바람 많이 불고 붕괴 위험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막연한 불안감이 팽배했습니다.
특히 1970년 4월 발생한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는 국민들에게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에 대한 엄청난 불신을 심어준 상태였습니다.
여의도 분양을 성공시켜 개발 자금을 회수해야 했던 서울시로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2. 1971년, 대한민국 주거 혁명의 시작 '여의도 시범아파트'
붕괴 불신을 종식시키고 중산층을 여의도로 끌어들이기 위해 정부와 서울시는 모든 기술력과 자본을 집약한 '본보기' 아파트를 짓기로 합니다.

그것이 바로 1971년 완공된 '여의도 시범아파트'입니다. 이름부터가 대중에게 안전함과 고급스러움을 '시범'적으로 보여주겠다는 뜻이었죠.
시범아파트는 당시 기준으로 그야말로 '주거 혁명'이자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최초의 고층 아파트:
당시 아파트들은 대개 5~6층 높이였으나 시범아파트는 파격적인 12층 높이로 지어졌습니다.
최초의 엘리베이터 도입:
계단을 오르내리던 시절, 국내 최초로 아파트 내부에 오티스(OTIS)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획기적인 난방과 구조:
연탄재를 버리던 시대에 중앙집중식 스팀 난방 시스템을 도입했고, 최초로 널찍한 대형 평수(20~40평형)와 현대식 주방 구조를 선보였습니다.
"아파트에 엘리베이터가 있고, 연탄을 안 때도 집이 따뜻하다니!"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시범아파트는 대성공을 거둡니다. 고위 공무원, 국회의원, 대기업 임원, 연예인들이 줄줄이 입주하면서 여의도는 순식간에 '대한민국 최고급 중산층 주거지'라는 명성을 얻게 됩니다.
시범아파트의 성공 이후 삼익, 은하, 한양, 광장 아파트 등이 도미노처럼 들어서며 여의도 황금 주거 벨트가 완성되었습니다.
3. 50년의 세월, 그리고 '스카이라인 대개조'의 서막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여의도의 오래된 아파트들은 또 한 번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태풍의 눈이 되었습니다. 지은 지 50년을 훌쩍 넘기다 보니 주차 공간이 부족하고 배관이 노후화되는 등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재건축' 도마 위에 오른 것입니다.
현재 여의도 재건축은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과 '금융 중심 지구단위계획'이라는 강력한 날개를 달고 정비사업 역사를 새로 쓰고 있습니다.
가장 상징적인 존재인 시범아파트는 최고 65층 내외
약 2,500세대 규모의 대단지로 탈바꿈을 준비 중이며
바로 옆 한양아파트 역시 종상향을 통해 최고 56층 높이의 초고층 주거·상업 복합단지로 시공사 선정을 마치고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공작, 수정, 진주 아파트 등 여의도 일대 노후 단지 전체가 한강 변 스카이라인을 뒤흔들 거대한 변신의 퍼즐을 맞추는 중입니다.
4. 에필로그: 모래섬의 기적은 멈추지 않는다
양들과 말들이 풀을 뜯던 쓸모없는 모래섬(1부)에서, 전쟁을 대비하던 거대한 안보 광장과 국회(2부)를 거쳐, 빌딩 숲을 이룬 한국의 맨해튼(3부)과 최고급 주거지(4부)가 되기까지.
여의도의 60년 개발사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 현대 현대사의 압축판'이자 '한강의 기적' 그 자체입니다.
과거 '시범'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주거의 기준을 바꿨던 여의도는, 이제 60~70층 초고층 금융·주거 복합 마천루로 다시 한번 탈바꿈하며 서울의 미래 100년을 이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10년 뒤, 우리가 마주하게 될 여의도의 스카이라인은 또 얼마나 눈부시게 변해있을까요? 그 위대한 변화의 흐름을 앞으로도 계속 주목해 봐야겠습니다.
그동안 [여의도 대개발사 시리즈]를 함께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도 더 흥미롭고 유익한 서울 개발·부동산 비하인드 스토리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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