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그럴수있어 그러라그래"입니다.
지난 1부에서는 비만 오면 물에 잠기던 쓸모없는 모래섬 여의도를 살리기 위해 바로 옆 밤섬을 폭파하고, 단 110일 만에 거대한 제방 둑(윤중제)을 쌓아 올린 극적인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렇게 한강 한복판에 뚝딱 만들어진 290만 ㎡(약 87만 평)의 거대한 대지. 이제 이 텅 빈 도화지에 무언가를 채워 넣을 차례였습니다.
오늘 다룰 [여의도 대개발사 2편]은 남북 대치 상황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여의도가 어떻게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지'이자 '거대한 안보 요새'로 설계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원래 여의도는 서울의 관문, '공항'이었다?
많은 분이 여의도의 과거를 떠올리면 모래섬만 생각하시지만, 사실 여의도는 오랫동안 서울의 관문 역할을 하던 '비행장(공항)'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에 간이 비행장으로 문을 연 이래, 광복 후에는 대한국민항공사(KNA)의 본거지이자 민간공항으로 쓰였습니다.
1953년에는 국제공항으로 승격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번 말씀드렸듯 고질적인 홍수 문제로 여름만 되면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결국 1958년 국제공항 기능이 지금의 김포공항으로 이전되면서, 여의도 비행장은 군용 비행장으로만 쓰이다가 윤중제 공사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즉, 여의도는 처음부터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평평하고 거대한 직선 땅'이라는 독특한 특징을 품고 개발이 시작된 것입니다.
2. 여의도 광장의 비밀: "유사시 전투기 활주로로 쓴다"
70~8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내신 분들이라면 국군의 날 행사 때 탱크가 지나가고, 수많은 시민이 자전거와 롤러스케이트를 타던 거대하고 삭막한 아스팔트 벌판, '여의도 광장(옛 5·16 광장)'을 기억하실 겁니다.
지금은 푸른 나무가 가득한 '여의도공원'으로 변했지만, 당시에는 왜 그 넓은 땅에 나무 한 그루, 벤치 하나 없이 오직 까만 아스팔트만 깔아두었을까요?
여기에는 서슬 퍼런 냉전 시대의 '군사·안보적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1970년대 초는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정부는 여의도 한복판에 길이 1,300m, 폭 300m에 달하는 초대형 광장을 조성하면서 한 가지 특수한 조건을 걸었습니다.
바로 "유사시 북한의 기습으로 김포공항이나 공군기지가 파괴되면, 이 광장을 즉시 공군 전투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비상 활주로'로 전환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광장 주변의 빌딩들이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서 지어진 것도 전투기 날개가 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평화롭게 자전거를 타던 그 광장은, 사실 언제든 전쟁을 치를 수 있도록 준비된 거대한 군사 시설이었던 셈입니다.
3. 세종로에서 여의도로, 국회의사당이 이사 온 이유
여의도를 상징하는 또 다른 거대한 축은 바로 섬 서쪽에 자리 잡은 '국회의사당'입니다.

원래 우리나라 국회는 종로구 세종로(현 서울시의회 건물 등)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건물이 협소하고 늘어나는 정치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신도시로 개발되던 여의도를 새로운 정치의 중심지로 낙점하고 1969년 착공해 1975년에 지금의 국회의사당을 완공하게 됩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지어질 당시부터 엄청난 스케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단일 의사당 건물로는 동양 최대 규모였으며, 석조 건물의 웅장함을 살리기 위해 전국에서 거대한 화강암을 실어 날라 외벽을 채웠습니다.
특히 국회의사당의 상징과도 같은 회색빛 '돔(Dome) 지 지붕'에는 유명한 도시전설이 하나 있죠.
유사시 남침이 시작되면 저 거대한 돔 지붕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안에서 '로보트 태권V'가 출격해 서울을 지킨다는 장난스러운 이야기입니다.
물론 당연히 사실이 아니지만, 그만큼 당시 국민들에게 국회의사당 건물이 주는 압도적인 규모감과 신비로움이 컸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사실 돔 지붕의 진짜 비하인드는 따로 있습니다.
원래 설계도에는 평평한 일자 지붕이었는데, 당시 국회의원들이 "의사당 건물이 웅장해 보이려면 유럽 국회처럼 위에 돔이 있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람에 건축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얹어진 것입니다.
밑은 사각형(직선), 위는 원형(곡선)인 독특한 형태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4. 안보 요새에서 민주주의와 시민의 공간으로
전쟁을 대비한 비상 활주로(광장)와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거대한 석조 의사당. 70년대의 여의도는 이처럼 다분히 군사정권의 통제와 안보 논리에 의해 철저하게 계산된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고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여의도의 성격은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삭막했던 아스팔트 광장은 1999년 조순 서울시장 시절, 3만 평이 넘는 푸른 숲을 가진 '여의도공원'으로 재탄생하며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삼엄했던 국회의사당 주변 역시 봄이면 화려한 벚꽃 축제가 열리고, 시민들이 잔디마당을 거니는 친숙한 공간이 되었죠.
5. 에필로그: 정치가 닦아놓은 땅 위에 피어난 '돈의 냄새'
이렇게 국가 주도의 거대한 계획을 통해 여의도는 도로, 수도, 전기 등 최고 수준의 도시 기반 인프라를 완벽하게 갖추게 되었습니다.
정치와 안보가 여의도의 단단한 뼈대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자, 완벽하게 인프라가 깔린 이 매력적인 신도시 땅을 보고 가장 먼저 눈을 반짝인 이들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대한민국의 자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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