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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여의도 개발과 시범아파트

by 돌풍돌핀스 2022.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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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여의도 63빌딩을 매일 바라보며 살고 있지만 인천에서 열심히 학교-집-TV-야구-잠을 담당하던 유년시절 개국한지 얼마안되어 매우 핫하던 SBS에서 우리들세상이라는 초등학생 대상 퀴즈프로그램이 있었다. 최선규 아저씨가 진행하고 각 학교별로 4명씩 나와서 팀대항으로 대결을 펼치던... 

매우 흥미롭게 보고 있는데 "아파트, 방송국, 63빌딩"의 공통점은? 이라는거다. 정답이야 모두가 알수 있듯 여의도이지만 아파트??? 난 그날 처음알았다. 여의도에 주거시설은 모두 아파트라는걸 정말 놀라웠던 기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여의도 시범아파트 여의도 개발의 시작

과거여의도1

1960년대 후반 당시 서울시는 마포건너에 여의도를 개발하면 서울의 주택난을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대규모 택지로 개발하기위해 1968년 2월 밤섬을 폭파했다. 이 골재로 여의도와 한강사이에 제방을 쌓하 지금의 여의도 형태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택지를 사겠다는 회사도 없고, 무언가를 짓겠다는 사람도 없으니 이번에는 1971년 여의도 종합개발계획안을 내놓는다. 

그래서 서울시가 직접 이곳에 시범을 보이겠다 한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탄생하게 된다. 마침 1970년 4월 마포구 와우아파트 붕괴사고까지 일어나 부실시공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져 있었으니 관심은 더욱 집중되었다. 게다가 삼부토건, 현대건설, 부국건설, 대림산업등 당시 대형건설사들이 참여하여 불과 착공 1년만에 완공을 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게 가능한건지는 지금도 의아하지만 지금도 안전진단 결과를 보면 무리는 아니었구나 싶다.) 

모든 처음 신도시가 그러하듯 여의도도 우울하긴 마찬가지였다. 버스도 없고, 주변엔 아무건물도 없고, 물건을 사려면 노량진으로 나가야 했으니 얼마나 갑갑했을지 상상이 된다. 게다가 12개동 1578세대는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난 대단지도 아니었다.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당시 초호화 시설로 유명했는데 엘리베이터와 전세대 냉온수 급수와 스팀난방이 갖춰져 있었다. 이후 각종 편의시설과 초-중-고가 한번에 세워지며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었고, 지금의 이미지를 형성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1980년대 구상한 1기 신도시가 여의도가 모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잠실과는 조금더 차별화된 모습이었을 것이다. 

최초의 분양가는 40평이 571만원, 25평이 212만원 이었는데 입주 두달만에 두배가까이 오르자 처음에는 택지를 사기 꺼려하던 민간 건설사들이 앞다투어 아파트를 짓기 시작한다. 삼익, 은하, 대교, 삼부, 라이프, 서울, 목화 등이 지어지며 지금의 아파트촌을 형성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1975년 국회의사당이 준공되었고, 1979년에는 증권거래소, 1980년에는 KBS가 들어오게 되었다. 

여의도시범아파트

이렇게 50년이 지난 고층아파트가 아직까지 남은 곳이 있나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그 모습이 충격적이다. 시범아파트 뿐만 아니라 그 인근의 모든 아파트가 이제 40살이 훌쩍 넘었다. 재건축을 여러차례 시도하기도 했지만 부동산 시장에 줄 충격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다가 이번 2021년 12월 신통기획에 착수했다. 여의도 마스터 플랜에 따라 제대로된 개발이 이루어진다면 한때 서울의 맨하탄으로 드높던 명성을 다시 찾는것은 큰 일이 아닐거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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