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그럴수있어 그러라그래"입니다.
1990년대 초반, 서울은 그야말로 '대공사 시대'였습니다.
1~4호선만으로는 쏟아져 나오는 시민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서울시는 5, 6, 7, 8호선이라는 거대한 네 개의 노선을 거의 동시에 착공하는 승부수를 던집니다.

1. 왜 한꺼번에 시작했을까?
당시 서울은 신도시 개발과 인구 폭발로 인해
"교통 지옥"이라는 말이 일상일 정도였습니다.
하나씩 순차적으로 지어서는 도저히 수요를 맞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울 전역을 파헤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번에 다 만들어서 한 번에 해결하자'는 목표로 2기 지하철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1990년부터 서울 곳곳에 "지하철 공사 중"이라는 펜스가 동시에 처진 이유입니다.
2. 시작은 같았지만, 도착지는 달랐던 이유
모든 노선이 1990년대 초반에 삽을 떴지만, 완공까지의 여정은 노선마다 극명하게 달랐습니다.
가장 먼저 결승선에 들어온 건 막내격인 8호선이었습니다. 8호선(잠실~모란)은 노선 길이가 짧고
지형도 평탄해서 공사가 막힘없이 진행되었습니다.
덕분에 1996년에 가장 먼저 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다음은 2기 지하철의 대장주인 5호선이었습니다. 5호선은 가장 길고 복잡했지만, 강서와 강동을 잇는
핵심 노선이었기에 서울시의 인력과 예산이 가장 집중적으로 투입되었습니다.
한강 바닥을 뚫는 난공사를 겪으면서도 8호선과 같은 해인 1996년에 전 구간 개통이라는 대업을 달성합니다.
반면, 7호선과 6호선은 시련이 많았습니다.
7호선은 강북에서 강남을 가로지르는
워낙 긴 노선이라 공사량 자체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청담대교처럼 철도와 도로가 함께 지나는 복합 구조물을 만드느라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결국 2000년이 되어서야 전 구간이 연결됩니다.
가장 운이 없었던 건 6호선이었습니다.
설계문제로 다른 노선들보다 착공이 조금 늦었던 데다 공사가 한창이던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건설사들이 줄줄이 부도가 나면서 공사 현장이 멈춰 섰고 결국 2000년 말이 되어서야 겨우 개통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개통 초기에는 공사가 덜 끝난 몇몇 역들을 무정차 통과해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3. 2기 지하철이 남긴 유산
비록 개통 시기는 제각각이었지만
이들은 1기 지하철(1~4호선)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서울의 더 넓은 범위를 촘촘하게 메워주었습니다.
1기 지하철이 일본의 도움을 받았다면
2기 지하철은 우리 기술력으로 빚어낸 진정한 '한국형 지하철'의 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생각해보면 그당시 서울 어디를 가도
지하철 공사장이었습니다.
지금생각해보면 어떻게 가능했나 싶지만
이 시간이 지금의 서울을 만들었음을 생각해보면
도시계획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느끼게 됩니다.
다음에는 다시 6호선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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