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서울 야구장 연대기] 훈련원터부터 잠실돔까지 하늘위를 가득메운 천둥같은 함성

by 돌풍돌핀스 2026. 7. 12.
반응형

안녕하세요 "그럴수있어 그러라그래"입니다.

​오늘 잠실야구장에서 펼쳐진 마지막 올스타전을 직관하며, 혹은 중계로 지켜보며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진 분들 많으셨을 겁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든 공간의 페이지가 또 이렇게 넘어가는구나 싶어 시원섭섭한 여운이 길게 남는 밤인데요.

​이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오늘은 우리 곁을 거쳐 간, 그리고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울 야구장의 역사와 그 속에 담긴 뜨거운 낭만을 되짚어보려 합니다.

무명옷에 짚신을 신고 방망이를 휘두르던 구한말부터 대한민국 최초의 돔구장까지, 서울 야구의 거대한 서사시를 시작합니다.

​1. 돔구장 이전의 '낭만 야구' 시절: 훈련원 터와 휘문고보 운동장

​우리가 흔히 '서울 야구의 시작'이라고 하면 동대문야구장을 떠올리지만, 사실 그전부터 서울 곳곳의 빈터와 학교 운동장에는 야구 소년들의 땀방울이 서려 있었습니다.

한국 야구의 첫 홈런이 터진 곳, 훈련원 터:
조선시대 군사들의 훈련장이었던 을지로 훈련원 터(현 국립중앙의료원 일대)는 초기 야구의 요람이었습니다. 1906년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와 관립한성고등학교의 한국 역사상 최초 공식 경기가 바로 이 거친 흙바닥 위에서 열렸습니다. 당시 선수들은 무명 고의적삼을 입고 짚신을 신은 채 공을 던졌다고 하죠.
창덕궁 담벼락 옆, 옛 휘문고보 운동장:
종로구 원서동(현 현대빌딩 자리)에 있던 휘문고등보통학교는 1922년 인근 사당 터를 매입해 운동장을 크게 넓혔습니다. 이 원서동 운동장에서 실력을 닦은 휘문고보 야구부는 1923년 한국 야구 최초로 일본 고시엔(甲子園) 대회에 조선 대표로 출전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2. 고교야구의 영원한 성지, 동대문야구장 (성동원두)

동대문운동장앞,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이미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경성운동장 야구장'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했던 곳이며, 1959년은 전쟁으로 부서진 구장을 현대식으로 중건하여 대대적으로 재개장했습니다.

​성동원두(城東原頭)의 함성:
옛 지명을 따서 '성동원두'라 불렸던 이곳은 봉황대기, 청룡기, 황금사자기, 대통령배 등 고교야구 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모교의 명예를 걸고 싸우던 선수들과 스탠드를 가득 채운 동문들의 흙먼지 날리는 응원전은 한국 야구 발전의 가장 단단한 밑거름이었습니다.
저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교야구, 대학야구, 실업야구등
매일 동대문에 출근도장찍던 야구소년이었습니다.

​아쉬운 이별: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MBC 청룡의 홈구장으로 쓰이며 프로 야구의 서막을 열기도 했던 이곳은, 도심 재개발과 시설 노후화로 인해 2007년 철거되었습니다. 현재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올드팬들의 마음속 영원한 메카는 여전히 이곳입니다.

​3. [번외] 야구장이 될 뻔했던 서울숲? 환상으로 끝난 '뚝섬 LG돔' 잔혹사

LG돔 조감도, 출처 : 위키백과

​서울 야구장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극적이고 아쉬운 비화가 있습니다. 바로 1990년대 중반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던 '뚝섬 LG돔 프로젝트'입니다.

​6만 석 규모의 초현대식 개폐식 돔구장:
1994년 우승으로 신바람을 내던 LG 트윈스는 성동구 뚝섬 일대(현 서울숲 부지)에 대한민국 최초의 전용 돔구장을 짓겠다는 초대형 계획을 발표합니다.
2002 월드컵 주경기장 활용 연계 구상까지 맞물리며 1997년 11월에는 법인도 별도로 만들고 현장 사무소를 차리고 실제로 착공에 들어가기까지 했습니다.
만약 이때 완공되었다면 LG는 뚝섬 홈, 두산은 잠실 홈으로 서울 야구 지형도가 완전히 바뀌었을 겁니다.

IMF 외환위기라는 대재앙:
하지만 축구계와의 조율 문제로 주경기장 부지가 상암동으로 변경된 데 이어, 결정타로 1997년 말 IMF 외환위기가 터졌습니다. 막대한 공사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기업 상황과 명분을 잃은 서울시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1998년 5월, 이 화려한 꿈은 전면 백지화됩니다.

기묘한 반전:
돔구장 계획이 무산되면서 서울시는 돌려받은 그 넓은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했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주말마다 나들이를 가는 '서울숲'이 되었습니다. 야구팬들에게는 눈물 어린 아쉬움의 공간이, 시민들에게는 최고의 휴식처가 된 흥미로운 역사적 아이러니입니다.

​4. 한국 야구의 거대한 심장, 잠실야구장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위해 태어난 잠실야구장은 명실상부한 한국 야구의 심장이자 최고의 무대입니다.

​황금기를 이끈 무대:
1982년 개장 이후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옛 OB) '한지붕 두 가족'의 홈구장으로 쓰이며, 프로야구 800만, 1,000만 관중 시대를 정면에서 이끌었습니다.
수많은 한국시리즈 명승부와 우승의 환호가 이 잔디 위에서 펼쳐졌죠.

다가오는 변화:
이제 잠실은 스포츠·MICE 복합단지 개발과 함께 새로운 돔구장 건설을 앞두고 있습니다. 오늘 열린 올스타전이 더욱 특별하고 아련하게 다가온 이유도, 우리가 이 정든 잠실의 '마지막 기억들'을 하나씩 채워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두구단은 잠시 잠실주경기장을 개조한 곳에서 페이지를 써내려갑니다.

​5. 과도기의 쉼터이자 영웅들의 요람, 목동야구장

목동야구장 기공식,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

​동대문야구장의 철거 논의가 한창이던 1980년대 중반, 서울시는 두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강남·북 균형 발전 및 서남권 체육 인프라 확충'이었고, 또 하나는 '동대문 철거 시 아마야구를 소화할 대체 부지 마련'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목적으로 1989년 문을 연 곳이 바로 양천구의 목동야구장입니다. 애초에 화려한 프로 상업 경기가 아니라 고교야구와 생활체육을 위해 지어진 "아마추어 전용 구장"이었습니다.

뜻밖의 프로 무대 변신:
재미있는 점은, 외야 스탠드도 없던 이 아담한 구장이 2008년 동대문이 진짜로 철거되면서 갈 곳을 잃은 창단 멤버 '우리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의 홈구장으로 전격 발탁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동대문의 대체지로 지어졌던 목동이, 동대문 철거라는 역사적 사건 때문에 8년간 프로야구의 뜨거운 심장이 되는 묘한 운명을 연출하게 된 셈입니다.

​6. 대한민국 최초의 돔구장, 고척스카이돔

고척스카이돔, 출처 : 나무위키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사계절 내내 야구를 즐길 수 있는 시대를 연 고척스카이돔은 서울 야구사의 가장 최근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야구장으로선 매우 아쉽지만 제 나름의 역할을 하고있는곳입니다.

직관 패러다임의 변화:
한여름의 타는 듯한 폭염도, 장마철의 우천 취소도 두렵지 않은 쾌적함을 선사하며 현재 키움 히어로즈의 홈구장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문화 랜드마크로의 진화:
이제는 야구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내한 공연과 대형 콘서트가 열리는 서울의 대표적인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글을 마치며:


공간은 변해도, 열정은 변하지 않는다
​훈련원 터의 흙먼지 속 짚신 신고 달리던 소년들의 열정은 성동원두의 뜨거운 함성으로 이어졌고, 잠실의 거대한 신바람을 거쳐 고척의 은빛 지붕 아래까지 흘러왔습니다.

비록 뚝섬 LG돔처럼 환상으로 끝난 아쉬운 역사도 있었지만, 그 모든 발자국이 모여 지금의 대한민국 야구를 만들었습니다.

​잠실에서의 마지막 올스타전은 끝이 났지만, 이것은 아쉬운 이별인 동시에 서울 야구가 맞이할 또 다른 미래(새로운 잠실 돔구장)를 향한 서막이기도 합니다.

​동대문에서 잠실까지, 여러분의 가슴을 가장 뜨겁게 만들었던 서울의 야구장은 어디였나요?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