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족보] ① 대한민국 아파트의 조상, '시범(示範)' 아파트 이야기
안녕하세요 "그럴수있어 그러라그래"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매일 접하는 재개발·재건축 소식의 뿌리를 찾아가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요즘은 '자이', '래미안' 같은 브랜드가 익숙하지만
70년대 서울에는 '시범, 시영, 주공'이라는 3대 가문이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바로 대한민국 고층 아파트의 기준을 세운 '시범아파트'입니다.
1. 탄생의 배경: 비극에서 시작된 '신뢰'의 프로젝트
시범아파트의 탄생 뒤에는 1970년 발생한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라는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당시 부실 공사로 아파트가 무너지자 국민들의 공포는 극에 달했고, 아파트는 "서민들이나 사는 위험한 집"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은 이 불신을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 승부수를 던집니다.
"국가와 서울시의 명예를 걸고, 절대 무너지지 않는 가장 튼튼하고 현대적인 본보기를 보여주겠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이름이 바로 '시범(示範)'입니다.
2. 여의도 벌판에 세워진 '미래의 집'

시범아파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바로 여의도 시범(1971)입니다.
당시 모래섬이었던 여의도에 지어진 이 아파트는 당시로서는 '혁명' 그 자체였습니다.
최초의 고층화:
5층 이하가 대부분이던 시절에 무려 12~13층으로 지어졌습니다.
엘리베이터의 등장:
국내 최초로 아파트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구경 인파가 몰렸습니다.
중산층의 유입:
수세식 화장실과 중앙난방 시스템을 갖춘 이 아파트에 고위 관료와 연예인들이 입주하기 시작하면서, "아파트는 중산층이 사는 고급 주택"이라는 인식이 처음 생겨났습니다.
3. '시범'은 서울 곳곳에 있었다 (화곡부터 남산까지)
시범아파트는 여의도에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서울시는 거점 개발을 위해 전략적으로 '시범'이라는 타이틀을 붙였습니다.
화곡시범 (1970): 당시 허허벌판이던 강서구 개발의 신호탄이었습니다. 현재는 재건축을 통해 대단지 브랜드 타운으로 변모했습니다.
도심형 시범 (회현·청운 등): 도심 노후지를 정비하며 "산동네도 현대적일 수 있다"는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4. 누가 지었을까? (시행 vs 시공)
많은 분이 헷갈려 하시는데, 시범아파트는 서울시가 계획하고 돈을 댄 '시행자'였고, 실제로 건물을 올린 '시공자'는 현대건설, 대림산업 같은 민간 건설사들이었습니다.
서울시의 깐깐한 감독 아래 당대
최고의 건설 기술이 집약된 셈입니다.
5. 50년 후, 다시 쓰는 시범의 역사

지금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최고 65층 규모의
초고층 단지로 재건축을 준비하며 또 한 번의 '시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70년대에 '미래 주거'를 표방했던 그 이름값이 21세기에도 유효하다는 점이 참 흥미롭습니다.
맺음말
"여의도나 화곡의 입지가 지금처럼 빛나는 이유는
50년 전 서울시가 가장 좋은 땅에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 정성껏 낙점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부동산의 가치는 결국 그 뿌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시범아파트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다음 편 예고:
시범아파트가 '본보기'였다면, 본격적인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서울시가 대량으로 공급했던 [제2편: 시영아파트]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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